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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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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b>(출처-9꿈사)</b> &#039;공시’ 공부, 대학도서관서 하면 안되는 이유
수강강좌(교수님) () 평  가 ★
등록일 2010.10.12 조회수 4,023

<b>정통부 일반행정 9급, 전남도청 지방행정 9급, 중앙선관위 일반행정 9급(2005년 합격)</b>

안녕하세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지 벌써 5년이 넘었는데 이제와서 합격수기를 쓴다는 것이 좀 많이 민망하지만, 5년전인 2005년에 3가지 시험에 합격하는 운을 가졌음에도 변변한 기록하나 남겨두지 못해 이번 기회를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수기를 써봅니다.

1998년 초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저는 공무원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보다는 외국어에 관심이 많았지만 이래저래 기업에 취직은 되지 않았고 그런저런 이유로 학원에서 영어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학원경력 3년 차쯤 됐을 때 상당히 규모가 크고 학생수도, 선생님도 많은 학원에서 근무하게 되며 학년주임도 맡게 되는 등 인정도 많이 받았고, 일은 힘들어도 매달 300만원 넘게 받는 급여 때문에라도 내가 하는 일에 기쁨과 보람을 느끼며 근무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강사들 사이에서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고 음모 등에 연루돼 하루아침에 해고를 당했습니다.

좀 더 나은 학원으로 옮기고자 내가 그만둔 학원은 있었어도 해고를 당한 학원은 처음이었고 너무나 사랑했던 학원이었기에 그 충격은 어떻게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컸습니다. 머리 뒤통수에 500원짜리 동전만한 탈모까지 생길만큼, 하루하루가 사랑하는 연인에게 배신당한 것 이상으로 힘든 나날이었습니다.

한 달 가까이 절망과 상실감 속에 허우적대며 경쟁학원으로 옮겨 복수라도 할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무엇보다 이제는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라는 가족들의 설득으로 4년여의 학원강사 생활을 접고 2003년 7월 초, 두 달간의 9급 종합반 과정에 등록을 했습니다. 영어강사 경력과 대학 때 전공했던 어문학 등 때문에 영어와 국어는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는 것이 공무원 시험을 어렵지 않게 준비하게 된 이유였지요.

학원은 그 때 다녔던 두 달이 전부였습니다. 두 달간 공무원 시험의 개념 정도만 익히고 그 후 대학도서관에 다니면서 공부하다가 상반기 9급 공채시험을 두 달 앞둔 2004년 4월에 독서실로 옮겨와 정말 열심히 했지만 그해 시험에 다 떨어졌습니다.

특히 제일 먼저 있었던 국가직 시험은 첫 시험이라 너무 긴장을 한 탓인지, 시험종료를 몇 분 앞두고 답안을 10여개 이상 내려서 마킹하는 실수까지 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판단하는 그 해의 합격의 실패이유는 공부장소였습니다. 독서실에서의 마지막 두 달을 제외하고 그전까지 공부했던 ‘대학도서관’은 버스로 30분 이상 걸리는 거리도 문제였지만 많은 이들, 특히나 남녀가 같이 있는 장소였기에 제게 공부보다는 외모에 신경을 쓰게 했으니까요.

그해 상반기에 봤던 세 번의 시험에 다 낙방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스스로 가능성을 점칠 수 있었던 것은 커트라인과 2점만 차이난 시험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해에 결혼을 하지 않을 거면 헤어지라고 3년쯤 사귀어온 남자친구 집에서 결혼독촉을 해왔습니다. 결혼을 하게 되면 살림에 매달려야 한다고 저희 집에서는 무척 반대했으나 결국은 그 해 9월 결혼식을 올리게 됐고 저는 살림과 공부를 병행하게 됐습니다. 그래도 시험준비도 거의 없이 응시했던 결혼 한 달 후 치른 서울지방직(2004. 10. 31) 시험에서 커트라인과 또 2점 차밖에 나지 않아 조금은 기뻤습니다.

그 시험 후 연말까지도 거의 책을 못 보다가 다음 해인 2005년 1월부터 다시 공부를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집에서 책을 본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다시 2월부터 독서실에 등록해 석달 정도 정말 피눈물이 나도록 공부했습니다.

원래 이른 아침부터 공부하는 것이 제 생체리듬과는 잘 안 맞는 탓에 저는 주로, 아침 10~11시경에 일어나서 대충 아침을 챙겨먹고 10분 남짓 되는 거리의 독서실까지 걸어가며 부지런히 강의테이프를 들었습니다(제가 듣는 테이프는 홍성운행정법, 김중규행정학, 재정국어 이렇게 세 가지였습니다. 물론 이 강의 테이프들을 모두 처음부터 길에서 들은 것은 아니고 책상에 앉아 책을 정독하며 들은 후, 어느 정도 개념이 잡힌 후에 자투리 시간 틈틈이 들은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12시가 좀 못 돼 도착한 독서실에서는 한번 자리에 앉으면 화장실에 갈 때와 오래 앉아있어서 불편해진 다리에 운동 좀 시켜주려고 잠깐 독서실을 한 바퀴 돌 때 등을 제외하고 거의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붙박이처럼 앉아서 책을 봤습니다. 물론 이것이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집중해 책을 봤다는 것입니다. 저녁식사는 집에서 가져간 먹을거리 약간이나 입맛 없어서 컵라면 등으로 때우는 날이 많았습니다.

2004년도에 암기과목은 제대로 보지도 않고 원래 좀 자신이 있었던 영어와 국어만 쓸데없이 많이 봤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2005년도에는 영어, 국어는 과감히 패스하고(사실 어느 정도만큼의 수준에 이르게 되면 영어나 국어만큼 실력이 늘지 않는 과목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세 과목에 집중 투자했습니다.

책은 잘 만들어진 기본서를 정해놓고 그 기본서를 오랜 시간 들여 정독했고 과목마다 정성껏 서브노트를 작성했으며, 기본서 이외의 책이나 책자 등에서 모르는 것과 생소한 개념들을 발견하면 서브노트에 추가하는 방식으로 했습니다. 사람마다 자기에게 맞는 학습방식이 있겠지만 저는 보통 수험생들이 많이 한다는 10~20회독처럼 다독의 방식이 아닌 정독의 방식을 택했고 그게 더 나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의 공부가 끝나면 그 날 익힌 것들 중 잘 안 외워지거나 반드시 알아야할 것만 붙임쪽지에 빼곡하게, 그러나 한눈에 보이도록 강조색 등으로 표시해 적어서 독서실 칸막이 안쪽이나 집의 제가 자주 보는 거울, 냉장고 등에 붙여놓고 눈이 책을 보고 있지 않을 때는 그 자료들을 잊지 않고 봐줬습니다. 집에서는 언제나 양치질할 때 집 여러 곳에 붙여둔 메모지 내용을 꼭 한 번씩 읽어줬습니다.

공부는 거의 늘 새벽 2시 독서실 문 닫는 시간까지 했고, 집에 와서는 씻고 공부에 필요한 정보 등을 찾느라 인터넷 잠깐 하다 새벽 3시경에 잤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책상에 앉아서 책을 보는 시간 이외의 시간에는 카세트를 들고 강의를 들으며 다녔습니다. 화장실에 갈 때도, 밥 먹을 때도, 길을 걸을 때도 언제나 말입니다. 지금이야 MP3네 뭐네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그때 제겐 아이와 찍찍이면 훌륭한 학습도구였습니다(수험기간에 그렇게 열심히 들었던 카세트여서인지 시험이 끝난 후 항상 동행하던 친구가 없어지니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더군요).

독서실에서 책을 다 펴놓고 공부의 준비가 다 되면 스톱워치를 켜고, 화장실에 갈 때 끄는 방법으로 하루의 공부 시간을 체크해가며 매일 다이어리에 기록해두고 매달 평가해보기도 했습니다.

행정법은 홍성운행정법만 줄곧 봤는데 그게 어느 정도였냐면 정독을 하며 정말 이해안가는 부분(주로 책의 오류)을 체크해서 그 책에 나와 있는 행정법 연구소에 직접 전화를 걸어 저자와 통화를 한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물론 거의 항상 거기 근무하시는 분이 홍성운교수님 안 계신다 하셨는데 제가 집에 있을 수 있는 시간에 끈기를 가지고 수차례 시도한 결과 결국은 통화할 수 있었고, 제가 제기하는 여러 가지 이의를 다 인정하시고 그 다음 개정판에 다 반영해 주셨습니다. 행정법은 정말 열심히 공부했던 탓에 거의 모든 시험에서 만점을 맞을 만큼 항상 제일 자신이 있었습니다.

국사는 어떤 특별한 수험서는 없었지만 2003년도에 두 달 다녔던 종합반에서 사용하던 이름없는 책을 기본서로 보다가 인터넷에서 선우국사를 무료로 들을 수가 있어서 그 선생님의 강의로 보완하며 서브노트를 만들었고 점수도 늘 착하게 나와 줬습니다(무료 수강하게 해주신 선우빈선생님께 늦게나마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행정학은 김중규님 것을 봤는데 마지막까지도 제일 자신 없는 과목이 행정학이었습니다. 그만큼 공부해야할 양이 제일 방대함에도 공부를 제일 많이 못했기 때문입니다.

영어는 제일 자신이 있었기에 제일 공부를 안한 편이었고, 국어 역시 맞춤법, 표준어, 외래어 등 문법 부분에 치중하고 나머지는 예전에 정리해둔 서브노트에 의존하거나 재정국어 테이프만 열심히 들었고, 마지막 한 달 정도 모의고사 정리할 때만 영어, 국어 틀린 것 위주로 점검했습니다. 그리고 시험 전날과 당일, 고사장에 가서는 열심히 정리해둔 과목별 서브노트만 챙겨봤습니다.

2005년 4월24일의 국가직 시험을 시작으로 5월1일 전남지방직, 5월8일 마지막으로 광주지방직을 쳤는데 가장 먼저 발표난 전남지방직에 합격했고 성적이 꽤 우수했던지 제가 원했던 지자체에서 바로 근무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7월에 발표가 난 국가직 시험에도 합격을 했더군요. 그런데 국가직은 작년에 그리 실수를 하다보니 두려움도 남아있고 그 해 제일 먼저 치러야했던 시험이다보니 안전지원한다고 정통부로 지원했었는데 직렬 수석을 했더군요(그 시험에서 제 점수가 89점이었는데 그 점수는 커트라인 80점이었던 정통부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많은 직렬에서 (최)상위 점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직으로 가지 않고 전남 지자체에 정착하고자 첫 아이도 가졌습니다. 그런데 떨어졌던 광주지방직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 그 다음 해에 다시 시험보고자 공부의 끈은 놓지 않고 있던 그 해 9월, 선관위 공채공고가 났는데 왠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그렇지만 전 그때 이미 공무원으로 근무를 하고 있었고 자동차 운전 연수와 사촌동생 영어 과외까지 병행하는 등 이러저러한 일들이 많아서 사실 공부는 많이 못했었는데 다시 한번 도전하고 싶은 마음에 응시했고 합격하는 운까지 따라줬습니다(12월24일 최종 합격, 임신 6개월째).

그래서 2006년 1월까지는 그 지자체에서 근무를 하고(6개월 남짓) 그해 2월부터 지금까지 저는 선관위에서 열심히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관위는 국가직이다보니 아무래도 몇 년마다 바뀌는 발령지가 매번 집에서 가까운 곳이 될 수는 없기에 저희 직원들은 제게 제 전임지 지자체가 더 낫지 않았겠냐고 많이 물어보시네요. 어디든 다 어느 정도의 장점과 단점은 존재하겠기에 지금 근무하는 곳도 물론 어려움이 없을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제가 맡은 일에 대한 보람과 즐거움을 느끼면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스물여덟 늦은 나이에 공무원 공부를 시작해 서른이라는 더 늦은 나이에 합격하였는데, 제 수험과정을 돌이켜보면, 처음부터 정말 열심히 했더라면, 그리고 처음부터 시험에 나올 것만 공부하고 안나올만한 것은 과감히 관심을 포기했더라면 1년을 안 넘겼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사실 정말 열심히 공부했던 것은 2004년의 두 달, 그리고 2005년의 석 달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을 몇 가지 정리해봅니다.

첫째, 공무원 공부를 취미삼아 하거나, 상식이나 지식의 폭을 넓히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시험에 나올 것만 공부해야 합니다. 저는 첫 해에 그다지 시험에 나오지 않을법한 국문학, 영문법 등에 한눈을 파느라 정말 많은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자신이 있는 과목은 그만큼 공부의 비중을 줄여도 된다는 말입니다.

둘째는 안정된 결혼이라는 것이, 불안정한 연애보다 공부에 매진하기에 더 적당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연애감정을 가지고 공부를 한다는 것 자체도 어렵겠지만 연인과 다투기라도 하는 날이면 공부에 집중하기가 무척 어려운 성격인 저같은 경우엔 결혼이라는 것이 그런 점엔 오히려 도움이 됐습니다. 그리고 결혼 후, 집안일 등은 가까이에 사시는 친정엄마가 저희 집에 일주일에 두세 번 오셔서 봐주셨고 간단한 청소나 설거지는 남편이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공부할 시간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셋째, 잠은 충분히 자야 합니다. 저는 늘 7시간을 채워서 잤습니다. 그래야만 그 다음날 집중도 잘되고, 그 날 공부한 것이 머릿속에 제대로 저장이 되기 때문입니다. 행정법 공부에 빠져 지내던 저는 꿈에서도 늘 행정법 이론, 판례 등이 나오더군요. 그런 꿈을 꾸는 것이 제 머릿속에 차곡차곡 잘 쌓이기 위한 통과의례라고 생각했습니다.

넷째, 야행성이신 분은 밤에 공부하는 것도 나름의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고도 하지만, 제 경우에는 별로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본인에게 맞는 방식이 있다면 그 방법대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정독이네 통독이네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 봤던 합격수기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10회독쯤은 기본으로 했다는데 저는 한 가지 책을 거의 다 한 번씩 밖에 정독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서브노트를 만들었고 그 노트를 기준으로 덧붙여가는 형식을 택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 본인에게 맞는 형식을 택하십시오.

다섯째, 여자임에도 술(맥주)을 많이 좋아하던 저였지만, 공부하던 기간엔 술을 거의 끊고 살았습니다. 술은 기억력을 감퇴시키고 숙면을 취하는 것도 방해하기에 공부에 치명적인 해를 끼치더군요.

어느새 저는 아들 하나, 딸 하나를 키우는 영락없는 아줌마가 되었습니다. 2005년 봄이 오기 시작했을 때 일기장 한 귀퉁이에 “내 인생의 봄은 언제쯤 올까. 오기는 할까?”라고 남겼던 글귀를 보며 이제는 새삼, ‘내게 그런 때도 있었지’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돌이켜보면 참 암울한 때였습니다. 도대체가 입맛이 없어 매일 거의 컵라면으로 연명하다시피 하며 햇빛도 일부러 다 막아 비타민 생성도 되지 않는 컴컴한 독서실에 찌그러져서 하루 14시간을 넘게 보내던 그 시절, 좋아하는 영화도 맥주도 친구도 드라마도 모두다 멀리해야 했던 때였지만 가끔은 뭔가에 그렇게 몰입할 수 있었던 그 때의 제 그 열정이 그리워지기도 한답니다. 그리고 아줌마에게 붙어버린 이 살들을 보며 맛없던 컵라면으로 인해 마르디 말랐던 그 몸매도 그립구요.

수험기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지치겠죠.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습니다. 공부 외에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공부에만 단기 집중 투자해 빠른 시간 내에 멋진 결과 이끌어내시길 바랍니다. 행복할 미래를 위해서 조금 더 힘내십시오. 여러분의 행운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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